게임 커뮤니티나 SNS, 유튜브를 보다 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작품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과금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번 캐릭터 뽑았어?"
"몇 돌 했어?"
"풀돌까지 얼마 들었어?"
"월에 얼마 정도 써?"
심지어 게임 자체의 이야기보다 과금 규모가 더 큰 화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면 마치 서브컬처 취미 자체가 곧 과금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서브컬처는 원래 훨씬 넓은 취미다
먼저 서브컬처라는 단어부터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흔히 서브컬처라고 하면 모바일 게임이나 가챠 게임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넓은 영역을 의미한다.
하나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작품을 즐기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 애니메이션 감상
- 음악 감상
- OST 수집
- 캐릭터 분석
- 세계관 연구
- 설정 정리
- 팬아트 감상
- 피규어 및 굿즈 수집
- 행사 참여
- 성지순례
- 친구들과의 덕질 대화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전투 시스템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스토리를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세계관을 파고든다.
즉, 서브컬처를 즐기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자꾸 과금 이야기만 보게 되는 걸까?
실제 취미 생활과 콘텐츠 소비는 다르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내가 보는 콘텐츠와 실제 사람들이 취미를 즐기는 방식은 반드시 같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를 생각해보자.
같은 게임을 다루더라도 다음과 같은 영상들이 있을 수 있다.
영상 A
신규 스토리 감상 및 해석
영상 B
신캐릭터 풀돌에 300만원 사용
둘 중 어떤 영상이 더 클릭을 많이 받을까?
대부분은 B에 가깝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보다 극단적인 상황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이건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 아반떼 5년 유지기
- 포르쉐 신차 출고기
두 영상이 있다면 대부분 후자가 더 많은 조회수를 얻는다.
PC 유튜브 역시 비슷하다.
- 적당한 가성비 PC
- 1000만원짜리 최고사양 PC
당연히 후자가 더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원래 비일상적인 것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과금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유튜버들은 왜 과금 방송을 할까
많은 사람들은 과금 방송을 보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돈을 쓰는 걸까?"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첫 번째는 단순히 콘텐츠로서의 가치다.
가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
적은 비용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마치 복권 추첨이나 카드팩 개봉 영상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결과를 알고 싶어서 보게 된다.
두 번째는 방송인의 수익 구조다.
시청자는 300만원을 사용했다고 생각하지만,
방송인은 조회수와 광고 수익, 후원 등을 통해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즉 일반인이 소비하는 300만원과 콘텐츠 제작자가 사용하는 300만원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세 번째는 게임사의 지원이다.
일부 게임은 광고 방송이나 협찬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방송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가 보는 화려한 과금 장면 중 일부는 일반 유저의 환경과는 다른 조건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일 수도 있다.
SNS는 현실을 왜곡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튜브와 SNS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구가 된다.
하지만 그 창구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게임 이용자 100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은
- 무과금
- 월정액 정도
- 소과금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SNS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굳이 자랑하지 않는다.
반면
- 풀돌 성공
- 초고가 과금
- 희귀 캐릭터 획득
- 최고점 세팅
등은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결국 우리는 소수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착각을 하게 된다.
다들 이 정도는 쓰는 건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말이다.
마치 자동차 유튜브만 보다 보면 너도나도 전부 포르쉐와 페라리를 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도로에는 아반떼와 스포티지가 훨씬 많은 것과 비슷하다.
과금은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과금은 매우 가시적인 활동이다.
얼마를 썼는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결과도 바로 보인다.
캐릭터도 얻고,
장비도 얻고,
강화도 된다.
반면 다른 즐거움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 스토리에 감동받았는지
-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 OST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지
- 세계관을 연구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은 숫자로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부분이 취미의 핵심인 경우가 많다.
최근 게임들은 오히려 스토리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의 인기 게임들이 오히려 과금 외적인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모바일 게임들은 캐릭터 획득과 성장 자체가 핵심 콘텐츠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작품들은 게임을 하나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만들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명조(Wuthering Waves)를 예로 들 수 있다.
명조는 출시 초기에는 액션성과 전투 시스템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스토리와 캐릭터 서사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이 나오고 있다.
신규 스토리가 공개되면 캐릭터 성능 분석 영상뿐만 아니라
- 스토리 감상 방송
- 컷신 리액션
- 세계관 해석
- 캐릭터 서사 분석
등의 콘텐츠도 함께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콘텐츠 역시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등장한 데니아(Denia)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캐릭터의 서사와 결말이 많은 이용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커뮤니티에서는 이른바 "데니아 증후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검색 엔진 자동완성에 "슬픈 데니아 증후군"이라는 표현이 나타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의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몰입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과금과 전혀 관계없는 즐거움이다.
몇 돌을 했는지,
얼마를 사용했는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이야기 자체에 감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전투 사이클 연구나 캐릭터 운용법 연구와 같은 콘텐츠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단순히 캐릭터를 구매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이해하고 즐기는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소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취미를 소비 규모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가끔 서브컬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얼마나 질렀어?"
물론 자연스러운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블루레이 몇 장 샀어?"
만 묻지는 않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반 몇 장 샀어?"
만 묻지도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굿즈 얼마 샀어?"
만 묻지도 않는다.
그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는지,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유독 게임에서는 소비 규모가 취미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취미일까, 플랫폼일까
어쩌면 우리는 서브컬처 취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보여주는 서브컬처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튜브는 조회수가 잘 나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SNS는 자랑하기 좋은 순간을 보여준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천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브컬처를 이야기할 때 과금과 소비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애니를 보고,
음악을 듣고,
스토리를 즐기고,
캐릭터를 좋아하고,
세계관을 파고들고,
친구들과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은 화려하지 않다.
조회수도 높지 않다.
알고리즘도 좋아하지 않는다.
과금은 보이지만, 감동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장 오래된 형태의 서브컬처 취미일지도 모른다.
마치며
과금은 취미를 즐기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좋아하는 작품을 응원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취미의 전부는 아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작품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얼마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에 감동했고,
어떤 캐릭터를 좋아했고,
어떤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으며,
누군가와 그 감정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서브컬처 취미는 처음부터 과금 이야기로만 흘러간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가장 눈에 띄는 이야기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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